비교하지말자 [401975] · MS 2012 · 쪽지

2015-02-01 22: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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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활의 트라우마, 혹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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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활의 트라우마, 혹은 기억

진력을 다해 수험생활을 보낸 이들은 누구나
저 마다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상상이상으로 시험을 망쳐 찔끔 흘렸던 눈물이나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느끼던 열등감.
수능기출,EBS만 바라보다 보면 생기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망가지는 건강을 바라만 보면서도 책상앞에 십수시간 앉아있어야 했던 경험.
대입의 과정때문에 간과해 잃어버린 사랑과 사람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루13,14시간을 
시체처럼 누워있는 글자들을 바라보며
시체처럼 펜을 끄적였지만 
그 노력의 댓가로 받아든 성적표는 한 없이 초라했다.

또한 
나는 십대의 막바지, 혹은 이십대의 초창기에
다양한 경험은 모두 포기한채로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공주처럼,
수능 고득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버거운 회의감이 자주 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첫날,
아침에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다보니
수건이 붉그스름해져있었다.

코피가 난 것이다.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나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서 수업을 듣고 자습을했다.
야자를 하고 독서실가서 수능기출을 풀고
집에와서 밀렸던 인강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도 수건은 붉게 물들었다.

재수삼수 시절에는 고2,고3시절 겪던 고충에 더하여
대학생이 된 친구들, 군대에 간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늦었다'는 생각이 계속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게다가 
대입의 노예가 되어버려 잃어버린 사랑과 사람을 생각하노라면
결과와 상관없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과정이 남긴 트라우마는 앞으로 짊어져야할 짐으로 남았다.

트라우마,
아니 '기억'이라고 부른다면 마음이 편해질
그 시절의 서슬퍼렇던 과정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자기착취를 하며 치열했었나.
그리고 그 치열함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나.

아직은,
십대후반, 이십대 초반의 경험이 새긴 영향력을
단언할 수는 없는 나이지만

깊이 생각해보노라면 그 과정속의 나는 절실했다.
새장에 갇힌 앵무새의 꼴이었지만
그 틀 안에서라도 나태해지지 않으려 투쟁했고,
지금 하는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려 최선을 다했다.

객관적으로는 부정적이었고 차가웠던 
고3, 재수, 삼수의 과정들

하지만 그 과정을 트라우마라고 부를지
단순히 기억이라고 치부할지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다.

그 시간들을 나태하게 낭비했다면 
현재의 발목을 잡는 트라우마가 될 것이고,

그 시간들에 충실하고 절실했다면
미래의 원동력이 되는 기억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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