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극탁 [1322566]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5-01-10 03:31:20
조회수 2,494

[제2외국어/한문 영역 가이드] 2. 제2외국어 교육과정과 문자-어휘

게시글 주소: https://snu.orbi.kr/00071203821

이전 글에서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이 글을 처음 보실 분들을 위해서 다시 언급하자면:

[유형1] : 독일어1, 프랑스어1, 스페인어1, 중국어1, 일본어1, 러시아어1

[유형2] : 아랍어1, 베트남어1

이며, 그 구분 기준은 '문법이 4페이지에 출제되는가 1페이지에 출제되는가'입니다.

이 기준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앞으로 별다른 언급이 없다면, 모든 서술은 [유형1] 과목을 기준으로 합니다.

한문1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랍어1도 많은 서술에서 예외가 되기 때문입니다.



0. 제2외국어 영역 과목의 교육과정과 출제 범위


영어 영역과 제2외국어 영역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출제 범위입니다. 영어 영역은 "출제 범위 과목(영어1, 영어2)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소재의 지문과 자료를 활용하여 출제"하지만, 제2외국어 영역은 그냥 그 과목이 곧 출제 범위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어1이라면 말 그대로 '일본어1' 과목이 출제 범위인 것입니다. 참고로 제2외국어 1과목은 일반적으로 일반고 2학년 때 배우는 과목입니다.

제2외국어/한문 영역(일본어)가 아니라, 제2외국어/한문 영역(일본어1)입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제2외국어/한문 영역의 본래 출제 범위는


일반고 2학년이 1년 동안 배우는 과목


으로, 원칙적으로는 제2외국어 영역은 일반고 2학년 때 1년 동안 제대로 배우고 열심히 공부했다면 1등급이 나와야 하는 영역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과목 시험지를 풀어보신 분이 계시다면... 실제로 그렇던가요?



네, 제2외국어 상대평가 시절 구조적으로 외고 출신과 해외 거주자 출신, (일본어 십덕베이스 등) 기타 유베이스 응시층을 이길 수 없는 일반 수험생이 아랍어1로 빠지고, 응시자가 줄어들어 난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이 때문에 다시 버틸 수 없는 수험생들이 아랍어1로 빠지고... 하는 악순환이 수없이 반복된 끝에 2010년대 초중반만 가도 제2외국어 [유형1] 과목들은 이미 교육과정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수준으로 출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2021학년도 수능을 끝으로 제2외국어 영역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해마다 난도가 급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반고 2학년이 1년 동안 배운 내용으로 커버되는' 시험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이에 대해 논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미 과도하게 올라간 난도를 다시 내리고 있는 추세인 만큼, 난도가 '어떻게' 올라갔으며, 다시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정도는 어떠한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미 10년도 더 전에 교육과정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면서, 왜 교육과정 이야기를 하느냐? 하는 의문을 가지실 것 같습니다.

온갖 변칙적이고 치졸하고 더러운 출제를 서슴지 않는 와중에도, 평가원이 차마 거스를 수 없었던 교육과정의 '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휘 범위입니다. 다른 것들은 교육과정 수준을 훨씬 초월하는 단계로 출제해도 '아무튼 교육과정에 근거했다'고 우길 여지가 있지만, 어휘 범위를 대놓고 어긴다면 너무 명백히 교육과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나타나는 특이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일본어1 시험지에서 보이는 띄어쓰기와 히라가나 사용 빈도입니다. 일본어를 고등학교 또는 수능 밖에서 조금이라도 공부해보신 분이라면,


일본어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한자를 많이 쓴다


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허나 일본어1은 상대평가 시절 그 살인적인 난이도에도, 일본어1 교과 구성상 '일본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차원에서' 도입하는 띄어쓰기를 철저히 지켜 출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자로 쓰는 단어를 역시 '초심자를 대상으로 한 과목'이기에 히라가나로 풀어 쓰는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2020학년도 6월 모의평가 일본어1 8번>


그 때문에, 각주로 어려운 단어가 나오는 경우 정작 어려운 단어들은 다 한자로 쓰면서 쉬운 단어들은 답답할 정도로 히라가나로 풀어 쓰는 아이러니한 모습도 많이 보입니다. 역시 이는 다시 말해 교과범위를 벗어나는 단어는 반드시 각주를 제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어려운 단어를 쏟아내서 변별 포인트를 주기는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아랍어1 같은 경우는 모든 응시자가 평등하게 베이스가 낮다 보니 단어가 변별 포인트가 되기도 합니다.


둘째는 문화 파트 소개 및 분석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문화 파트에서의 다량 각주입니다. 위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문화 지문에는 기본적으로 각주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교과 범위 내 어휘만으로는 제대로 된 문화 지문을 쓰기가 힘들거든요.


셋째는... 어휘 파트 다룰 때 이야기하겠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제2외국어 영역은


문자-어휘(5문항)

의사소통(16문항)

문화(5문항)

문법(4문항)


으로 구성되며, 일본어1과 러시아어1을 제외하면 위 순서대로 문항이 배치됩니다 (이 두 과목은 의사소통과 문화의 위치가 반대입니다). 즉, 모든 제2외국어 영역 과목의 1번~5번 문항은 문자-어휘 파트 문항으로 구성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문자-어휘 파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문자 (발음, 강세, 성조)


편의상, (제가) 어휘를 제외한 모든 파트를 '문자'로 묶어 부르고 있지만 이 파트에는 발음, 강세, 성조 등의 요소가 모두 포함됩니다. 물론 강세는 강세가 있는 언어에서만, 성조는 성조가 있는 언어에서만 출제됩니다.


문자-어휘는 본래 6문항이었다가 14수능부터 5문항으로 줄었습니다. 6문항이던 시절에는 모든 과목이 평등하게 문자 3문항 어휘 3문항이었는데, 5문항으로 축소된 이후는


서양어군(독일어1, 프랑스어1, 스페인어1): 문자 2문항 어휘 3문항

그 외: 문자 3문항 어휘 2문항


으로 출제됩니다. (앞으로도 편의상 독일어1, 프랑스어1, 스페인어1을 묶어 부를 때 '서양어군'으로, 중국어1과 일본어1을 묶어 부를 때 '동양어군'으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가끔 서양어군에서 문자 3문항 또는 러시아어1에서 문자 2문항이 출제될 때가 있긴 하지만, 무시해도 될 정도로 드뭅니다.


이유는 아무래도 서양어는 영어와 동일한 알파벳을 사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미세한 차이가 있긴 한데요... 아예 다른 문자를 쓰는 언어와는 분명 입장이 다르죠.


출제되는 유형은 한정적이며, 상대평가 시절에도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유형1]에서도 선을 넘지 않은 파트입니다. 사실 이 파트는 선을 넘고 싶어도 넘을 수가 없기 때문이긴 합니다.


(1) 문자 (발음, 강세, 성조 제외)

<2020학년도 수능 프랑스어1 2번>


서양어군은 문자 문제가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솔직히 진짜 억지로 내는 느낌이 강합니다. (실제로 문자를 아예 패스하고 발음/강세만 2문항 나올 때도 있습니다 - 특히 독일어가 그렇습니다) 왜 서양어군은 2문제만 내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2020학년도 수능 중국어1 3번>


언어 특성상 문자 파트가 가장 어려운 건 중국어1입니다. 그래 봤자 문자 파트이긴 합니다.

<2020학년도 수능 일본어1 1번>

<2020학년도 수능 일본어1 3번>


일본어는 발음에서 물어볼 게 딱히 없고 강세나 성조는 존재하지도 않아서 ('악센트'가 있긴 한데, 수능에서 묻지 않습니다) 문자에서 2문항이 나옵니다. 보통 가타카나 1문항, 한자 표기 1문항이 출제됩니다.


(2) 발음, 강세, 성조

<2020학년도 수능 독일어1 1번, 2번>


언어적 특성에 따라, 발음이나 강세, 성조를 묻습니다. 서양어군은 거의 저렇게 나옵니다.

<2020학년도 6월 모의평가 러시아어1 2번, 3번>


러시아어1은 주로 '강세'가 아닌 '발음'으로 묻는 경향이 강한데, 어차피 같은 모음이 발음이 다르면 그게 강세 차이라서 강세 문제도 겸하는 것입니다.

<2020학년도 9월 모의평가 일본어1 2번>


일본어1에서는 종종 '박의 수'를 묻는데, 이 '박'이라는 개념이 수능 일본어 밖에서는 접할 일이 잘 없는 개념이라 (출제진이 이를 의도하고 내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공부 안 한 유베를 썰어버리는 역할을 하곤 합니다. 뭔지만 알아놓으면 틀릴 일이 없는데, 은근히 오답률 중상위에 자주 올라와요.

<2025학년도 수능 일본어1 3번>


한자 발음 문제입니다. 일본어의 각종 한자 발음 차이가 중요하면서도 (초심자 입장에서) 까다로울 수 있는 문제인데도 잘 안 나오는 편이었는데, 2015 개정 교육과정(21학년도~) 들어 위의 '박의 수' 문제가 출제되는 빈도가 많이 줄었고 한자 읽기를 묻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한 변화라 생각합니다. 난도와는 별개로 정말 쓸데 없는 문제라 생각하거든요.

<2021학년도 수능 중국어1 1번, 2번>


매 회차마다 어느 정도 유형의 변주가 있는 타 과목과 달리 중국어1은 1번~3번 문항이 발음조합-성조배열-한자표기 순으로 거의 고정입니다. 중국어 성조가 제가 생각하기에 문자(발음, 성조, 강세 포함) 파트에서는 전 과목 통합 가장 어려운 유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나머지는 거저 주는 문제에 가까워요.

<2021학년도 수능 베트남어1 1번, 2번, 3번>


사족이지만 안 그래도 평등하게 쉽게 나오는 문자 파트에서 베트남어1은 유독 더 대충 내는 듯한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은 몇 개 주고 조합하라고라도 하는데...



2. 상대평가 시절의 어휘


앞서 언급했듯, 제2외국어 영역은 기본적으로 교육과정의 어휘 범위를 초과해서 출제하지 않습니다. 일반고 2학년 수준의 제2외국어 1과목에 지정된 필수 어휘는 그야말로 기초 어휘이니, 문자 못지않게 매우 쉬운 파트일 것 같습니다.


......분명, 그래야만 했습니다.


2018학년도 수능 독일어1 4번 정답률 19%(EBSi) / 27%(메가스터디)

2018학년도 수능 독일어1 5번 정답률 12%(EBSi) / 27%(메가스터디)

2018학년도 수능 스페인어1 4번 정답률 23.2%(EBSi) / 38%(메가스터디)

2018학년도 수능 스페인어1 5번 정답률 25.8%(EBSi) / 30%(메가스터디)

2018학년도 수능 중국어1 4번 정답률 21.5%(EBSi) / 26%(메가스터디)

2018학년도 수능 중국어1 5번 정답률 25.5%(EBSi) / 42%(메가스터디)

2018학년도 수능 일본어1 4번 정답률 31.5%(EBSi) / 38%(메가스터디)

2018학년도 수능 일본어1 5번 정답률 44%(EBSi) / 53%(메가스터디)*


* 해당 문제는 통계상 정답률은 높지만 매우 '나쁜' 문제입니다. 나중에 따로 다룰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 러시아어1은 전체 표본 수와 채점 표본 수가 모두 너무 적어 정답률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 프랑스어1은 당시까지는 어휘 파트에서 장난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답률 이슈와는 별개로 러시아어1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보시다시피 과목을 불문하고 정답률이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정 한 해의 특이한 상황이 아니며,


2021학년도 수능 독일어1 4번 정답률 17%(EBSi) / 18%(메가스터디)

2021학년도 수능 독일어1 5번 정답률 17.5%(EBSi) / 18%(메가스터디)

2021학년도 수능 프랑스어1 4번 정답률 22.6%(EBSi) / 21%(메가스터디)

2021학년도 수능 스페인어1 5번 정답률 37.9%(EBSi) / 43%(메가스터디)

2021학년도 수능 중국어1 5번 정답률 28.1%(EBSi) / 34%(메가스터디)

2021학년도 수능 일본어1 4번 정답률 31.3%(EBSi) / 38%(메가스터디)


21수능에서도 오답률 탑5 안에 어휘 문제가 그득그득합니다. 참고로 스페인어1과 일본어1을 제외하면 모두 오답률 1위입니다. (독일어1은 두 문제가 각각 1위, 2위)


원래 상대평가 제2외국어 영역의 꽃(?)은 문법 파트로, 정답률 10%대가 다반사인 막장 킬러들이 난무했습니다. 허나 수학 영역에서 킬러에 과하게 힘주는 경향이 줄어들던 것처럼 제2외국어 영역 문법에서도 그 정도로 극악하게 출제하는 경우는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그 덕에 어휘 파트는 문법 킬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킬러의 위상까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절대평가화 이후에도 어느 정도는 유지되었거나, 유지되고 있습니다. 2022학년도 수능 독일어1, 프랑스어1, 스페인어1, 중국어1, 일본어1 5번 문제는 모두 EBSi 기준 오답률 탑5 안에 들어 있습니다. 난도가 내렸어도 최소 준킬러급 역할을 했다는 의미죠. 독일어1은 2025학년도에도 4번이 오답률 1위, 5번이 오답률 5위로 최상위 킬러 역할을 하고 있고, 나머지 과목은 현재는 좀 더 정상화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분명 교육과정 내 어휘 범위를 철저히 준수해서 출제한다 하지 않았나? 기초 어휘 범위 지켜서 내는데 어떻게 어휘가 킬러 역할을 하지? 이에 대한 답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언급했던 것에 있습니다.


교육과정 수준을 훨씬 초월하는 단계로 출제해도 '아무튼 교육과정에 근거했다'고 우길 여지


생각해봅시다. 기초 어휘만으로 문항을 구성하면서 어떻게 교육과정 수준을 훨씬 초월하는 단계로 출제할지. 이게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셋째"입니다.


(1) 관용 표현

<2018학년도 6월 모의평가 일본어1 4번>


- 이제 곧 6시를 ___.

- 이사를 해서 근처의 집에 인사하러 ___.

(1) 오르다 (2) 지나다 (3) 통하다 (4) 돌다 (5) 맞이하다


답을 고를 수 있으신가요?


답은 4번입니다. 일본어로 돌다(마와루)에는 '시각이 좀 지나다'라는 의미가 있고, 이때는 시각을 목적어로 갖기 때문입니다.


이걸 어떻게 아냐고요? 그럼 틀려야죠. 아무튼 '돌다'는 기본 어휘입니다.

<2021학년도 수능 일본어1 4번>


이노우에: 야마구치 씨, 회의 준비 끝났어요.

야마구치: 고마워. 이노우에 씨는 일이 ___서 좋아.

이노우에: 언제든 또 불러 주세요.

(1) 가까워 (2) 둥글어 (3) 친해 (4) 상냥해 (5) 자세해


답은 5번입니다. 코마카이(자세하다, 세세하다, 빈틈없다)를 '섬세하다/꼼꼼하다'로 해석해서 골라야 합니다. 모르겠다고요? 틀리면 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저도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코마카이'라는 형용사를 사람한테 쓰면 '타산적이다, 인색하다'라는 뜻이 되기도 하고, '예민하다'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주관적인 맥락에서 '코마카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 '사소하다', '쫀쫀하다'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는 경우가 많아서...


정답률은 31%나 되지만, 맞힌 사람 중에서도 정확히 알고 맞힌 사람은 매우 적으리라 생각합니다. 위 문제는 1~3번은 일단 아닌 것 같게 생겼으니 현장에서는 양자택일 게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에요.

<2021학년도 수능 중국어1 5번>


- 아이가 시험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는 기뻐 ___했다.

- 많은 친구들의 도움 덕에 나의 ___문제가 모두 해결됐다.

(1) 모자라 / 모두 (2) 나빠 / 모두 (3) 죽어 / 모두 (4) 모자라 / 일체 (5) 나빠 / 일체


해당 시험 오답률 1위입니다. '너무', '죽을 만큼'의 느낌으로, 나쁘다(坏)와 죽다(死)는 서술어 뒤에서 정도를 강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와중에 모자라다(差)는 '나쁘다', '(무언가를) 못하다' 같은 용법으로도 쓸 수 있기에 이 문제를 딱 보면 그냥 혼란이 옵니다. 역시 모르면 그냥 뒤져야 합니다.

<2021학년도 수능 독일어1 4번>


밑에 언급한 21수능 독일어1 5번 문제가 딱 봐도 굉장히 어지러워 보이는데 그걸 이긴 4번은 대체 뭘까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am Ball bleiben"이 '계속 정진하다'라는 관용어더라고요. 근데 Ball은 영어랑 똑같은 의미, 즉 '공'이고 bleiben은 '머무르다/지속되다'입니다. ㅋㅋㅋ... 오답률 1위 먹을 만 했네요. 너 짱 먹어라.

<2022학년도 수능 일본어1 5번>


A: 또 화장실 가? 아까 갔다 오지 않았어?

B: 미안. 난 커피를 마시면 화장실이 ___져.

(1) 가까워 (2) 빨라 (3) 자세해 (4) 짧아 (5) 많아


절대평가 이후 기출입니다. 절대평가화 직후인 22수능이라 아직 난도를 덜 내린 모습입니다. (과목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제2외국어/한문 영역 기출들 보면 22수능이랑 24~25수능 난도 차이도 꽤 큽니다) 답은 무엇일까요? 이쪽이 오답 선지는 오히려 더 매력적인 것 같기도 하네요.


(2) 다의어 퍼즐


사실 관용 표현 장난질도 다의어 퍼즐이라면 다의어 퍼즐이지만, 좀 더 순수한 다의어 퍼즐도 있습니다.

<2020학년도 수능 중국어1 4번>

<EBSi 해설>


해설만 봐도 어지럽습니다. 이 문제의 정답률은 30.7%(EBSi)~35%(메가스터디)입니다.

<2021학년도 수능 독일어1 5번>

<EBSi 해설>


정답률 17.5%인데 오답률 1위가 아닌 문제입니다. 역시 해설만 봐도 어지럽습니다.

<2018학년도 수능 중국어1 4번>

<EBSi 해설>


정답률 21.5%(EBSi)~26%(메가스터디)입니다. 어째 계속 어지럽다는 말만 하게 되는데 역시 어지럽습니다...

<2020학년도 수능 프랑스어1 5번>

<EBSi 해설>


정답률 23.6%(EBSi)~27%(메가스터디)인데... 저기 해설에 한국어로 번역된 선지 꼬라지 보세요. 어이가 없습니다. 참고로 EBSi 통계 기준으로는 1번과 3번의 선택률이 동일하며 5번 선택률은 30%를 넘습니다.

<2018학년도 수능 스페인어1 5번>


정답률 25.8%(EBSi)~30%(메가스터디)입니다. 답이 1번 chico인데, 앞에서는 '소년', 뒤에서는 '작다'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2022학년도 수능 스페인어1 5번>


절대평가 이후 기출으로, 정답률 24.7%(EBSi)~27%(메가스터디)입니다. 이 문제는 가짜 다의어(?) 문제입니다.

답이 4번 bien인데, 위 빈칸에는 bien을 넣으면 '매우/아주'란 뜻이 되어 agua bien fría = 아주 차가운 물이 되지만,

아래 빈칸에는 Si bien = '비록 ~일지라도'(although)라는 전혀 다른 단어가 맞춰집니다.



3. 절대평가 이후의 어휘


위에서도 봤듯이, 22수능까지는 여전히 고난도~초고난도 수준의 관용어/다의어 퍼즐이 여러 과목에서 출제되었으나, 24수능 이후로는 과도한 출제는 점차 지양하는 추세인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1페이지에 고정된 파트라는 것 자체가 가장 기초적인 부분, 가장 쉬운 파트여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10~11수능 때 문법의 난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1페이지에서 4페이지로 이동한 역사가 증명합니다) 도리어 선을 넘는 출제로 킬러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으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어1 같이 여전히 고난도로 어휘를 출제하는 과목도 있고,

중국어1이나 일본어1 같은 과목은 예전에 비해 어휘 난도가 정말 많이 낮아진 것은 맞으나 중국어적/일본어적 감각이 부족하다면 틀리기 쉬운 형태로 문제가 나오고 있습니다.

EBSi 기준 24수능 프랑스어1 5번, 스페인어1 4번, 일본어1 4번, 25수능 독일어1 4번 & 5번, 중국어1 5번은 여전히 오답률 탑5에 들어갑니다. 특히 이 중 24수능 스페인어1 4번과 25수능 독일어1 4번은 오답률 1위입니다.

(단 오답률 자체는 많이 낮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 메가스터디는 제2외국어 영역 허수 급증 때문에 최근 수능들은 정답률이 그냥 개판이 되어버려 참고할 가치가 없습니다. 무슨 2번이 정답률 24% 이러고 있음...)

<2025학년도 수능 중국어1 5번>

<EBSi 해설>


或者와 还是, 方便과 舒服의 차이를 묻는 교과서적인 문항입니다. 하지만 후자는 그렇다 치고 전자, 즉 或者와 还是는 둘 다 '또는'이란 의미라서 이게 왜 한쪽만 가능한지에 대한 중국어적 감각이 필요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정답률 40.9%로 오답률 5위였습니다.

<2024학년도 수능 일본어1 4번>

<EBSi 해설>


이 정도면 과거의 관용어/다의어 뇌절파티가 아니라 충분히 물어볼 만한 수준의 문제입니다. 정답률 36.5%였습니다. 5번 선택률이 27.4%로 꽤 높았는데, "오후 3시까지" 시작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2025학년도 수능 독일어1 4번, 5번>

<EBSi 해설>


제가 독일어를 몰라서 조심스럽지만 이건 절대평가 레벨을 넘은 것 같아 보입니다... 5번 정답률 30.1%였습니다.


23수능까지는 러시아어1을 제외하고 [유형1] 모든 과목에서 어휘 문제가 오답률 탑5 안에 들어가지만 24수능 이후로는 어휘가 확실히 비킬러로 돌아가는 추세를 보이고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종종 어휘에서 어려운 문제가 나오기도 하며, 25수능 독일어1 4번이나 24수능 스페인어1 4번처럼 오답률 1위를 당당히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런고로 조금 황당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오늘의 잠정 결론은 제2외국어 영역을 선택하셨다면 2010년대 후반 이래로 어휘 파트는 원래 어렵게 출제됐으니, 1페이지에서 막힌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자... 정도로 두겠습니다. 그래도 26수능에는 더더욱 정상화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Bisu_JD · 700932 · 16시간 전 · MS 2016

    제2외국어 어떻게 이렇게 잘 아시는지 궁금해요ㅋㅋㅋㅋㅋ 좋아요 눌렀습니다

  • JJONAKLOVE♡♡♡ · 968227 · 14시간 전 · MS 2020

    와 ㅈㄴ 정성스럽게 쓰셨구나 몰랐네

  • 중앙혁명당 · 986544 · 10시간 전 · MS 2020

    작수 스어 2 받았는데, 딱 어휘 한 문제 버리고 문법 두세 개 버린다고 생각하는 게 편합니다. 이렇게 하면 가끔 운 좋으면 1이고 앵간하면 2는 떠요

  • 탁극탁 · 1322566 · 7시간 전 · MS 2024

    이런 후기 매우 좋아요
  • Bonzo · 1001001 · 10시간 전 · MS 2020

    21 독일어는 ㄹㅇ 선 넘었는데 25 저 두 문제는 해당 단어 잘 모른다고 해도 소거법으로 충분히 맞힐 수 있을 듯...?
    그런데 am Ball bleiben 은 독문 읽으면서 처음 보는데, 저런 게 수특이나 교육과정 내용으로 대비가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ㅋㅋ

  • 탁극탁 · 1322566 · 7시간 전 · MS 2024

    불가능하죠. 정답률 17%는 찍느니만 못한 문제였다는 의미인데, 독일어1 교육과정은커녕 외고 독일어과 나온 사람도 죄다 썰어버리는 수준이었다고 봐야겠죠
  • 약연 · 1217741 · 9시간 전 · MS 2023

  • Pharma · 1277967 · 7시간 전 · MS 2023

    일본어는 히라가나로 바꿔서 오히려 헷갈릴때도 많은듯
    그냥 한자로 보는게 쉬운 문장도 있는것같음..ㅇㅇ

  • 탁극탁 · 1322566 · 7시간 전 · MS 2024

    일본어 좀 배운 사람이라면 불편한 게 정상이죠
    よる あつい やさしい 같이 한자에 따라 뜻이 다양하게 달라지는 단어들은 더더욱..

  • 이상한 사람만 팔로우함 · 1255438 · 6시간 전 · MS 2023

    3 4 5번이 제일 어려운게 중국어만 그런게 아니구나

  • 이상한 사람만 팔로우함 · 1255438 · 6시간 전 · MS 2023

    3 4 5 18 19 20이 젤 어려움

  • 탁극탁 · 1322566 · 6시간 전 · MS 2024

    28 29 30번 말씀이시겠죠?

  • 탁극탁 · 1322566 · 5시간 전 · MS 2024

    4번 5번은 글에서도 계속 언급했지만 절대평가화 이후엔 확실히 쉬워졌어요 특히 중국어는 상평 때랑은 비교하기 민망한 레벨..

  • {:Default Name} · 1293062 · 4시간 전 · MS 2024

    이 글만 보면 일본어가 제일 할만한 거 같은데
    어렸을때 한자 3급 정도 까진 따놓은적 있으니까 한문도 괜찮지 않을까 고민도 되고,
    막상 한문 시험문제 보면 아예 한자로 된 문장들 보자마자 숨막히고 ㅋㅋㅋ

  • 탁극탁 · 1322566 · 4시간 전 · MS 2024

    혹시 왜 이 글을 보고 일본어가 가장 할만한 것 같다고 느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Default Name} · 1293062 · 4시간 전 · MS 2024

    그냥 개인적인 느낌에서 일본어 어휘쪽 문제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기초적인 한국어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이해하는 방식하고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이 글자 조합이 어떤 뜻이니까 대충 이런 의미고
    이 단어는 여기 조사에 대응할 수 없으니까 탈락 이런식


    관용표현이나 다의어 같은 경우도 서양언어권은 이게 뭐야 싶은데
    동양쪽은 그럴만하다 느끼는 것도 좀 있고
    서양 언어권 어휘들은 또 남성/여성도 있으니까 대놓고 숨이 턱 하고 막히고
    중국어는 그냥 보기부터 불편해 보이는데
    일본어가 여기 나온 언어중에선 제일 괜찮아보이는 느낌

    근데 일본어 배우려고 한자도 배울거면 차라리 한문하는게 낫지 않나
    싶어서 고민중이에요

  • 탁극탁 · 1322566 · 4시간 전 · MS 2024

    다의어 퍼즐은 몰라도 관용어 퍼즐은 대부분 일반적인 수험생 입장에서 수능날 처음 보는 관용어가 튀어나오는 유형입니다. 아는 놈이 나온 게 아닌 이상 현장에서의 삘과 촉에 올인해야 하는 문제예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제 전달력의 문제입니다... 특히 처음에 제시했던 "6시를 돌다" 문제는 (수능이 아닌 6평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오히려 중국어가 언어적 특성상 애초부터 1음절 동사는 거의 반드시 다의어라 동사 뜻 제대로 공부해놓으면 상평 수준도 그나마 극복 가능한 편이라 생각해요.

    물론 24~25수능 기준으로는 그런 막나가는 관용어 문제가 일본어에서 더 이상 안 나오고는 있습니다. 일본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과목)도 마찬가지 추세라서 26수능 때는 거의 정상화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 탁극탁 · 1322566 · 4시간 전 · MS 2024

    다만 그와는 별개로 한자 걱정은 별로 안 하셔도 됩니다. 바로 이 글에서 언급했듯 수능 일본어1에서는 의도적으로 한자를 잘 안 쓰기 때문입니다.

  • {:Default Name} · 1293062 · 3시간 전 · MS 2024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번외로
    일본어 vs 한문 두 과목 비교했을때

    어떤 과목이 더 진입장벽이 높다고 생각하시거나
    어떤 과목은 어떻게 진입장벽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거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일본어 : 상용한자의 범위, 단어 마다 달라지는 한자 발음, 조사 규칙
    한문 : 상용한자를 넘나드는 범위, 한자의 원형을 찾아볼 수도 없는 한자어의 의미
    ex. 光陰 > 빛과 어두움 > 양과 음 > 세월

    이런식으로요
    둘 중 하나 고를 건데 둘다 진입장벽 때문에 고민중이에요

  • 탁극탁 · 1322566 · 3시간 전 · MS 2024

    - 상용한자의 범위: JLPT가 아닌 수능 일본어1을 공부하는 이상 의미가 없는 수준입니다. 이게 힘들면 한문1은 하시면 안 됩니다
    - 단어마다 달라지는 한자 발음: 수능 기초어휘 수준에서는 역시 별로 어려울 게 없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다만 절대평가 후 2~3번(한자발음) 오답률이 높게 집계되는 경우가 늘어난 걸 보면 절평표본 입장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조사 규칙: 킬러 문제인 조사쓰임(27번 또는 28번) 문제를 맞히시려면 눈물을 흘리며 케이스를 세세하게 외우셔야 합니다. 이 문제를 깔끔하게 포기하신다면 한국어적 감을 크게 벗어나 예외를 사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상용한자를 넘는 범위: 고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 의미가 변형된 한자어: 일상에서 쓰는 한자어의 독음을 알면 충분합니다. 이전 글 참고해 주세요.

  • 탁극탁 · 1322566 · 2시간 전 · MS 2024

    알림이 안 갔을 것 같아 답댓글 다시 남겨요

  • {:Default Name} · 1293062 · 2시간 전 · MS 2024

    답변 이제 확인했습니다.

    제 2 외국어 시험들이 전반적으로 난이도 자체가 예전만큼의 괴랄할 정도의 난이도도
    아니거니와 절대평가로 전환된 취지가 변별보단 기본기를 묻는 것에 취지를 둔 만큼
    언어 자체가 가진 초반 진입장벽만 해소되면 만점은 아니더라도
    제 2외국어가 대입평가에서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 않는 등급까지는
    도전 해볼만하지 않나 하는게 칼럼 쓰신분의 요지인거같아요


    한문시험도 확인해보니까 막 그렇게까지 엄청 어려운건 아니고
    예전에 공부했었던 한자 다시 기억해내는거 정도면 초반 진입장벽을 넘을만한 것 같네요
    덕분에 제2외국어 선택에 도움됐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라모르겠 · 1041278 · 4시간 전 · MS 2021

    한달간 하루30분씩해서 프랑스어 26점 받았는데
    이게 문법,철자발음 등이 어렵고 외우기 힘들어
    공부안하고
    단어만 최대한 눈에 익혀두고
    대화문 안내문 위주로 감으로 풀었습니다

    근데 해보니 알파벳이라는 점은 좋지만
    영어랑 비교도 안되게 어렵더군요

    그래서 일본어 생각중인데
    프랑스어랑 비교하면 3등급 받기 난이도가 어떻게
    될까요..?

  • 탁극탁 · 1322566 · 4시간 전 · MS 2024

    일본어 노베시라면 일본어 하지 마세요. 제가 상평시절 현장응시한 게 일본어1이고 당시 45점 (백분위 93, 1컷 46) 받았었는데, 일본어1은 요즘 수능도 50점 안 나옵니다. 푸는 시간은 1/3으로 줄긴 했어도...

    일단 일본어1은 쉬운 문제를 대폭 늘리되 어려운 문제는 여전히 쉽지 않게 출제하는 경향(예: 조사쓰임)을 보이고 있고, 절평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 파트에서 고맥락 언어인 일본어의 특징을 십분 반영하여 맥락을 빡세게 고려해야 풀리는 문제의 비중이 높습니다. 특히 요즘 수능을 기준으로는 중국어나 다른 언어는 보통 해석만 하면 풀리게 내는데, 일본어는 해석이 다 되는데도 틀릴 수 있는 문제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어적 감각'이 없는 노베에게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 탁극탁 · 1322566 · 3시간 전 · MS 2024

    말씀하신 대로라면 프랑스어1은 9점만 올려도 3등급이신데, 일본어1을 0점에서 35점 만드는 난도보다는 프랑스어1 9점 올리는 게 훨씬 쉬우리라 봅니다

  • 안녕빠이짜이찌엔 · 1177284 · 2시간 전 · MS 2022

    혹시 모든 언어가 노베인 사람 기준으로 최소한의 공부로 4등급 정도 맞기 가장 쉬운 과목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중국어는 기초 회화 병음만(한자 1도 모릅니다... 지금 본다면 8,9등급 뜰 거에요), 한자는 물수 불화 정도만 압니다(마찬가지로 8등급입니다). 다른 언어는 아예 모르고요.

  • 탁극탁 · 1322566 · 2시간 전 · MS 2024

    이 주제에 대해 독립적인 글로 다룰 예정인데

    이 질문만 계속 받아서 솔직히 저도 조금 지치네요.. 이 글을 먼저 써야 하나.. 일단 제 입장은 스페인어/프랑스어/베트남어 중 하나를 하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