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383625] · MS 2011 · 쪽지

2015-10-09 16:40:12
조회수 11,598

30대 아재가 들려주는 진로 선택에 관한 조언...

게시글 주소: https://snu.orbi.kr/0006621734

언젠가 한 번 써야지 했던 글인데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쓴다.


수능 고작 한 달 앞두고 이런 글이 무슨 큰 도움이 될까, 차라리 한국사 파이널 대비 공부 방법론이나 올릴까 고민도 했지만 오르비에 이런 글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쓴다. 공부하다 지쳐 잠시 쉬는 시간에 가볍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20대 중반, 남들이 진로를 고민할 무렵 나 역시 진지하게 내 장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무슨 일을 하면 기쁠까?

그 때 우연찮게 내 목표를 발견했다.

나는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글쟁이.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

나는 그 중에서도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했고,

차곡차곡 지식이 쌓인 이후에는 그것들과 내 생각을 정리해 글로 풀어내는 걸 즐겼다.

특히 오르비를 알고 난 이후,

'나도 칼럼니스트' 게시판 등을 통해 사람들과 내 글을 공유하고 그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며,

이 길이 내가 갈 길이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굳혔다.


그러나 칼럼니스트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나는,
(삼성이나 LG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만큼 정해진 길 따위는 없다)

쓴 글을 평소 자주 가던 인터넷 신문사 한 곳에 무작정 투고했다.

글을 투고한 지 불과 몇 시간이 흘렀을까, 휴대폰으로 전화가 한 통 왔다.

그 신문사 사회부 기자의 전화였다.


내가 쓴 글은 당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국제중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 기자는 내가 보낸 글을 정말 잘 읽었다며 신문에 싣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기자는 내게 직업을 물었다.

교사인지, 아니면 교육 관련 시민단체에 속해 있는지.

그 정도의 전문성을 갖춘 글인가 싶어 내심 기뻤다.

그게 2008년 여름의 일이었다.


이후로도 글은 꾸준히 썼다.

하지만 몇 편의 글이 더 실릴 동안에도,

신문사에서는 원고료에 대한 말이 없었다.


칼럼니스트는 같은 공간에 글을 쓰는 기자와는 돈을 버는 체계가 다르다.

기자는 신문사에 속해 있는 직원으로서 매달 월급을 받지만,

칼럼니스트는 그저 글 한 편당 얼마씩의 원고료를 받을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신문사는 사정이 열악하여,

외부 기고가의 글에는 원고료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경험했다 생각하기로 하고 다른 인터넷 신문사를 알아 봤다.


자리를 옮긴 곳에서는 글 하나당 3만원 정도의 원고료를 줬다.

회사에서는 글의 분량은 최소 A4 용지 1장 반 이상이면 좋겠다고 했다.


한 편의 칼럼을 작성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써야 할 주제에 대한 사전 공부를 하고,
(책이나 논문을 찾는 것은 기본이고, 필요하다면 직접 취재까지 해야 한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할 지에 대한 구상을 한뒤,

본격적으로 칼럼 쓰기에 돌입,

작성 이후에 글을 매끄럽게 다듬는 편집까지 하고 나면,

족히 하루를 잡아 먹었다.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이 3만원.

시간으로 쪼개면 법정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루에 하나씩 꾸준히 써도 월수익은 90만원.

그러나 매일 쓸 수도 없었다.

그 정도면 거의 칼럼을 찍어내는 기계 수준이다.


3년 정도 일을 하면서 제법 인정도 받았다.

청탁도 제법 받게 됐고,

신문사 내부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에서 상도 받았다.


그러나 원고료는 제자리였고,

먹고 사는 처지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내 나이 20대 후반...

친구들은 이미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대리 진급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연봉은 못해도 4천 만원 이상, 잘 나가는 친구는 6천 만원도 더 받았다.


나?

여전히 월수입이 100만원이 채 안 됐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연애, 결혼, 출산, 육아, 주거, 늙어가는 부모님, 하나밖에 없는 자식, 불안한 그분들의 노후...

포털 메인화면에 걸리는 칼럼의 바이라인에 내 이름 석 자가 박혀 있다고 기뻐하기엔,

내 처지가 곤궁했다.


목표를 새로 잡았다.

이번에는 인터넷 신문사에서 벗어나, 일간지, 그것도 메이저 일간지로 옮기기로 마음 먹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인터넷 신문사보다야,

메이저 일간지로 옮기면 금전적인 측면에서 나아지고, 또 커리어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겠지.


메이저 일간지 한 곳을 정해, 편집부 메일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다.

소식이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메일을 보냈다.

얼마만에 겨우 답변이 왔다.


먼저 인터넷판에 칼럼을 올리고,

그것들 중 괜찮다 싶은 것들은 종이 신문에도 실어주겠다고.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드디어 메이저 일간지에 진출했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원고료 이야기가 나온 순간이었다.


원고료는 5만원이었다.

그러나 글 하나에 5만원이 아닌,

'월 5만원'이었다.

한 달에 최소 2개 이상의 칼럼을 써야 하며, 2개 이상의 글을 쓰는 건 상관없지만, 글이 몇 개가 됐건 원고료는 최대 5만원밖에 못 준다고 했다.


즉, 다시 말해 매달 2개의 글을 쓸 경우 원고료는 건당 2만 5천원이라는 소리였다.

오히려 원고료가 전보다 더 줄어든 셈이었다.


황당해진 내가 이런 경우도 있느냐고 묻자,

담당 기자가 보통 시세가 그렇다며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칼럼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했다.

일을 시작한 지 4년여 만의 일이었다.


물론 거기서 이를 악물고 몇 년을 더 버텼다면 사정은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4년을 버틴 결과가 원고료 2만 5천원이었던 나에게,

더 버틸 여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만약 부모님에게 물려받을 상가 건물 한 채 정도 있었다면 또 몰랐겠지만,

나는 내 손으로 벌어 내가 먹을 쌀을 사야 하는 처지였다.

그리고 더 나이를 먹으면 부모님이 드실 쌀까지 사야 할 처지였다.


작년엔가 재작년엔가,

토크쇼 '택시'에 영화평론가 허지웅과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이 출연했었다.

그들은 방송 도중 글쟁이들의 원고료 인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원고료가 도통 오르지 않는다며 한탄했다.

글 이외에, 방송으로도 성공한 그들같은 사람들도 원고료에 대해 고민하는구나 싶어서,

내심 그 길을 벗어난 것을 잘한 선택이라 여기게 됐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에게 진로에 대한 조언을 할 때, 신중해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적성에 맞는 일이 최고다, 라고 말하기엔,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몸소 부딪히고 깨져 봤기 때문이다.


타협하는 삶?

나쁘지 않다.

자아실현?

그걸 꼭 직업으로 하라는 법은 없다.

하고 싶은 일?

취미나 세컨드 잡으로 해도 된다.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경제적인 측면이 고려 대상 1순위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걸 대단찮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얼마를 벌고,

'평균'적으로 그 일을 몇 살까지 할 수 있는지.

과거에는 어땠고,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지.

가장 잘 된 케이스만 봐서도 안 되고,

가장 안 된 케이스만 봐서도 안 된다.


내가 죽을 만큼 열심히 하면 성공 그까이거~

하는 호방함은 잠시 접어두고,

냉정하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


지금은 나는,

글을 잘 쓰지 않는다.

과거에는 정치, 사회, 미디어 전반에 걸친 글을 정말 많이 썼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랬고, 일을 하면서는 더 그랬다.


근데 지금은... 쓰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일을 그만두고서 얼마 동안은,

한글창을 띄어놓은 모니터만 봐도 짜증이 났다.

그 새하얀 배경이 어찌나 거슬리던지... ㅎ


예전에 어떤 어른이 내게 이런 조언을 했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은 생업으로 삼지 말라고.

그냥 취미로 내버려 두라고.

그 말의 의미를 일을 그만두고 나서야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먹고 사는 것과 직결이 되면,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일단은 당면과제인 수능을 무사히 잘 치르고,

그 이후 원서영역 기간에는 이 문제에 대해 정말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해봐야 한다.

이 시기에 그렇게 고민하지 않고 대강 점수 맞춰 대학에 진학하면,

이후 높은 확률로 반수 또는 N수에 뛰어들게 된다.


자...

이제 오르비를 끄고 공부할 시간입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